[나고야 아리마쓰] 400년 전통의 염색과 에도시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2026.09.15 10:21 엄상용 조회 208 댓글 0

[나고야 아리마쓰] 400년 전통의 염색과 에도시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에도 시대의 숨결이 그대로 멈춰 선 곳, 나고야시 미도리구의 아리마쓰(有松) 거리를 직접 취재차 찾았다. 1608년 도카이도(東海道)의 에도와 교토를 잇는 길목, 나루미와 치류우 위치했던 이곳은 본래 치안이 불안하고 도둑이 들끓던 위험 지역이었다.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이 지역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8명의 주민을 이주시키며 도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러 가지 사정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이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개척한 돌파구는 다름 아닌 시보리(しぼり, 홀치기염색)였다. 천을 실로 묶고 쥐어짜 무늬를 만드는 이 고된 수작업은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을 지탱하는 거대한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취재 현장에서 만난 아리마쓰 시보리 상공협동조합(有松絞商工協同組合)의 나리타(成田) 이사장은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마을의 역사와 소상공인들의 생존 전략을 들려주었다. 그의 생생한 증언 속에서 나는 오늘날 한국의 소상공인과 지역 재생이 나아가야 할 소중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리마쓰의 위치 및 나고야역에서 찾아가는 방법]

아리마쓰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남동쪽 끝자락인 미도리구(緑구)에 위치해 있다. 나고야 중심부의 현대적인 풍경과 달리,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타임슬립을 한 듯 에도 시대의 고풍스러운 정취가 펼쳐진다. 도심과 멀지 않아 나고야를 방문하는 취재진이나 관광객들이 접근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은 명철(메이테쓰, 名鉄)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나고야 역에서 메이테쓰 나고야선(名鉄名古屋線) 도요하시 방면 준급(準急, Semi-Express) 열차를 탑승하면 환승 없이 약 18분~20분 만에 아리마쓰 역에 도착할 수 있다. 만약 급행(急行) 열차를 탔다면 전 역인 나루미(鳴海)역에서 보통(普通) 열차로 갈아타면 된다. 아리마쓰 역에서 내려 도보로 약 3~5분만 걸어가면 곧바로 에도 시대의 옛 가이도(街道) 거리가 시작된다.

 

1. 기술 있는 소상공인의 단단한 협업과 생존력

 

아리마쓰의 거리에는 에도 시대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간직한 전통 가옥들이 즐비하다. 법령에 의한 엄격한 규제 탓에 주민들은 건물을 마음대로 고치지 못한다. 후손들이 가업을 잇지 않아 과거 시보리를 하던 건물만 보존된 곳도 많지만, 현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정부가 지급하는 3년간 약 1억 5천만 엔의 지역 정비 보조금 덕분에 역사적 풍광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 보조금은 아리마쓰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전통적인 지역 정비, 경관 보존을 위해 전액 투입된다. 현재도 이곳에는 일반 회사원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며 삶의 터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취재 중 가장 놀라웠던 점은, 마을 경제의 핵심이자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아리마쓰·나루미 시보리 회관(有松・鳴海絞会館)에는 정부 보조금이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직 소상공인들이 결성한 상공협동조합이 100% 자립으로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주말이면 150명에서 200명에 달하는 외지인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 상인들이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자생력을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70여 가지의 독특한 기호를 조합해 무한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아리마쓰 시보리는 전통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이 직접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보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독립 매장들이 골목 곳곳에 새로 생겨나고 있었다.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신선한 사례다. 젊은이들이 일상의 유카타(잠옷)로 시보리를 선호하고, 해외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선물용으로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전통 기술을 기반으로 한 소상공인 간의 새로운 협업 생태계가 피어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 소상공인들이 힘을 합쳐 완성하는 자립형 축제 (6월과 10월)

 

아리마쓰 소상공인들의 저력은 축제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마을의 정체성을 담은 큰 축제가 열린다.

 

6월: 아리마쓰 시보리 마츠리 (有松絞りまつり)

어느덧 41회를 맞이한 전통의 퍼레이드 축제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자립형 축제’라는 점이다. 예산은 관공서의 지원 없이 전부 주민과 상인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축제 기간 동안 상인들은 시보리를 사러 온 수많은 인파에게 약간의 흠집이 있는 ‘상처 있는 물건’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며, 이 판매액의 10%를 실행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지불하여 경비를 충당한다. 41회라는 긴 시간 동안 축제를 치러오며 서로 양보하고 룰을 지킨 덕에 상인 간의 분쟁은 전혀 없다고 나리타 이사장은 강조했다.

 

10월: 아리마쓰 가을 축제 (有松山車祭り, 아리마쓰 다시 마츠리)

 

매년 10월에는 아리마쓰 덴만샤 신사의 가을 대제인 ‘아리마쓰 축제(유산 축제)’가 개최된다. 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3대의 거대한 축제 수레(다시)가 오랜 도카이도 거리를 관통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 역시 마을 주민들과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통문화 유산을 직접 운영하며 지역의 결속을 다지는 소상공인 중심의 자치 축제다.

취재를 마치며: 고독한 장인, 그리고 후계자 문제라는 과제

 

나리타 이사장과의 심층 인터뷰 끝자락에 마주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아리마쓰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후계자 부족’이었다.

 

시보리(しぼり) 기술을 익히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사실상 휴일이 없다. 쉬는 날 없이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천을 묶고 짜내야 하는 작업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고독하고 힘든 싸움이다. 화려한 축제의 뒤편에는 묵묵히 골방에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실을 당기는 장인들의 고독한 노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피로와 세대교체의 공백 때문에, 전국적으로 시보리를 알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인 정신을 계승하려는 후손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고야의 작은 역참도시 아리마쓰가 보여준 400년의 생존기는,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금에 의존하기보다 소상공인 스스로가 기술을 혁신하고(공동협동조합 운영), 축제의 비용을 스스로 분담하며(판매액 10% 적립), 젊은 감각을 수용하는 자생적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독한 장인의 기술이 외롭지 않게, 젊은 소상공인들의 감각과 어떻게 결합하여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 이번 아리마쓰 현장 취재는 우리 소상공인 생태계와 지역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지자체들에도 매우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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