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11월19일 매경에 기고된 글을 필자와 협의아래 글을 게재합니다)
대한민국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굴지의 기업인들이 모인 이번 회의는 단순한 외교행사를 넘어 우리의 국격과 문화를 세계에 각인시킨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난 40년간 국제회의 현장에서 수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한 경험을 돌이켜볼 때 국제행사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 국민의 참여, 문화의 깊이가 동시에 드러나는 복합적인 국가 브랜드 플랫폼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번 APEC 2025 KOREA는 그 정점이었다. 경주와 부산, 울산이 무대가 되어 대한민국 역량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지금 '이 감동과 성취를 어떻게 후대에 남길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았다. 행사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록'이다. 행사는 끝났지만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이 다시 그 나라의 품격을 증명한다.
조선시대에 나라의 주요 의례와 사업을 정밀하게 기록한 '의궤(儀軌)'가 있었다. 왕의 즉위식, 혼례, 국장, 궁궐 건축까지 모든 절차와 세부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이를 통해 우리는 500년 전 국가운영과 미학을 복원할 수 있다. 이 기록문화의 결정체인 '조선왕조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기록 자체가 문화유산'임을 입증했다.
그 정신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기록을 통해 외교하는 나라'로 도약할 것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APEC 정상회의 국가 의궤' 사업이다. 단순한 백서 발간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의 이야기이자 외교의 예술적 기록이다. 정상회의 준비와 개최, 국민의 참여, 개최 도시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각국 정상들과 함께 만든 장면까지 기록하는 국가 차원의 문화유산 프로젝트다.
외교부가 정책 성과를 정리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기록유산의 체계를 설계하며,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문화자산을 담아냄으로써 'APEC 정상회의 국가 의궤'는 국가 차원의 협업 결과물로 완성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외교가 문화로 승화하는 것이며, 미래 세대에게는 외교 교과서가 된다. 대한민국의 외교·문화·기록 전통이 융합된 새로운 국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이 기록이 글과 사진, 영상,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가 결합된 형태로 제작돼 각국 정상에게 공식 기념본으로 전달된다면 한국은 '기록으로 외교하는 나라'로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행사의 성공은 순간의 감동으로 끝나지만 잘 기록된 행사는 다시 사람을 부르고 도시를 성장시킨다. 'APEC 정상회의 국가 의궤'를 통해 경주와 부산, 울산은 대한민국 문화외교를 대표하는 상징 도시로 자리 잡을 것이다.
행사는 끝났지만 대한민국의 외교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된다. 기록은 국가의 품격이며, 기억은 외교의 미래다. 2025년 APEC 정상회의의 진정한 '레거시'는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있다. '기록으로 남는 외교, 기억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이 현실이 될 때 한국 외교가 역사로 완성된다.
[최태영 APEC 2025 KOREA 총괄 PCO 대표 (주)인터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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