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대륙, 판이 움직인다.”
[탐방]파나아트(PAN-ASIAN INDUSTRIAL ART), 남철한 대표
수많은 사람들과 효과들이 뒤엉켜 춤추는 밑바탕. 이 무대를 또 하나의 대륙으로, 새로운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이들이 있다. ‘아름다운 배짱’으로 가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나고자 하는 파나아트. ‘MAX’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한 3D도면을 2D도면으로 바꾸는 작업에 한창인 직원들을 지나, 남철한 대표를 만났다.
Q. 무대입문 계기 그리고 '무대'를 만드는 매력. 처음에 무대 작화를 해보려고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래서 무대 디자인으로 시작했다가 파나아트 당시 사장의 권유에 영업으로 돌아선 것이다. 무대의 매력은 건축과 비슷하다. '지어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준비할 때는 고생하지만 행사가 딱 시작이 되면 성취감과 동시에 자부심이 마구 솟는다. 방송매체에도 오르고. 그러니까 피곤한 걸 모르고 다음 일에도 기대와 함께 임하는 것이다.
Q. 파나아트 대표가 되기 전, 동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한 것인가. 그렇다. 먼저 ‘한양공사에서 이성우 대표와 같이 영업부장으로 근무했었다. 1986년도에 입사해 1990년도까지 있다 나와서 일본 패션잡지 겸 브랜드인 '논노(Non-no)' 한국매장과 ’미치코런던‘ 패션무대, 모델라인 등의 무대작업을 했다. 그러다 ’파나아트‘가 91년도에 창업했고, 영업부장으로 2년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당시 파나대표와 둘이서 뛰며 일을 수주하였다. 그러다 SBS아트홀, 등촌동SBS 스튜디오, 비바아트홀 스튜디오 등에서 '이주일 쇼’, ‘자니윤 쇼' 등 10여개 이상의 SBS예능프로 녹화무대세트를 정기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세트를 다시 제작했는데, 월요일이 녹화라 토요일 저녁만 되면 일하러 나오고 월요일 아침에야 집에 '기어'들어갔다. 그 때 신혼이었는데(웃음). (프로그램이 많아) 365일 하루를 못 쉬었다. 그러다 결국 '파나'에서 나가 독립하게 된 것이다.
Q. 다시 파나아트를 인수하면서 특별히 펼치고자 한 뜻이 있었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연계성을 갖고 하나가 하나로 이어진 것이다. 무대를 하다 보니, 상설 전시장 일도 하게 되고 매장 인테리어 공사, 백화점 디스플레이 등도 차례로 맡게 된 것과 비슷하다. 1993년도 독립해 같은 무대 회사인 동보기획을 차렸다. 1998년경 (주)공간예술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2002년도까지 상설전시 일을 많이 했다. 당시 '아- 고구려'전 외 시리즈와 '엄마 어렸을 적엔'등 조선일보 주최 전시들과 예술의 전당, 용산전쟁기념관 등에서의 상설기획전도 제작을 맡았다. 이후 2006년도까지 무대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2006년 7월, 파나아트를 인수해 대표로 부임한 것이다. 적자야 면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내리막 시점에서의 선택받은 후임자, 내가 단행한 것은 김포 사옥에서 마포로의 본사 이전이었다. 그것은 강남 쪽에 많았던 이벤트 사와의 접근성 때문이기도 했다.
Q. 한 때 파나는 크지 않은 업체들이 전화 문의를 하면 잘 안 만나준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한다고 하면 다른데서는 견적도 못 내밀었다. SBS예능세트를 거의 우리가 도맡고 여력으로 이벤트 행사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이 기존 일을 소화하는 데만 감당 못할 정도로 바빴던 것이다. 대기업 50주년 기념행사들, 월드컵조 추첨행사 등 큰 행사는 우리가 거의 다했다. 이런 큰 행사는 무조건 '파나'를 줘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Q 파나 만의 강점이 지금도 이어지는가. 그렇다. '썩어도 준치'랄까. 첫째는 파나의 전통이다. 전시를 포함한 전 분야의 무대를 다해본 경험과 거기서 우러나온 자신감이 최고장점이다. 마감 처리하는 것, 일 해내는 것도 원하는 대로 잘 나온다는 평을 들으니까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스케일이 좀 되는 행사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데 우리의 강점이 있다. 한 번도 리허설 시간에 지장을 준 적이 없다. 낮12시 리허설이면 여러 인원을 투입해 오전 10시에 다 끝내놓고 간다.
Q. 제일 기억나는 행사. 돈은 돈대로 깎이고 고생은 고생대로 한 행사였다. 10여 년 전 경찰의 날 행사. 주최 측에서 그 전 행사가 밤10시에 끝나는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리허설을 하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다른 업체들이 다 못한다고 '나자빠지는‘ 와중에 그들이 우리한테 매달렸고, 밤새 성심껏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정작 행사를 하는데 전광판LED가 안나와버리네……. 결국 다른 파트의 업체들에게까지 피해가 왔다. 좋은 기억은 88년도 올림픽. 제일 고생했지만 제일 잘됐다.
Q. 무대, 그리고 파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무대가 7~8할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비율은 정반대 양상이다. 무대를 단순하게 나누면 뒷벽과 바닥인데, 뒷벽은 LED로 처리하고 무대 바닥시공만 하는 추세. 작년에 무대 조합을 추진해 50여개 업체가 모였는데, 사실 이 전체 판에는 200여개가 넘는 업체가 있다. 이처럼 소업체들이 늘면서, 가격경쟁도 심화되었다. 내리막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면 다시 차오르는 위치에너지가 된다. 올 해는 시작이 괜찮다. 작년에 2014인천아시안게임 전초전으로 아시아무술대회에 참여했었는데 그 스텝 그대로 아시안게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디지털 시대 도래 후 무대도 디지털 개념으로 움직인다. 또 요즘 방송 일에 붙박이로 들어가는 경우는 파트별 시스템 사들을 묶은 형태다. 이와 같은 흐름을 타고 우리도 '종합렌탈샵'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싶다. 내년에 공장을 이전해 무대구조물인 '레이어'를 직접 제작하게 될 것이다. 무대와 더불어 종합적 세트를 아우르게 되는 것이다. 종합렌탈체계를 일찍이 시도한 일본 무대업체는 직원이 2~3백 명 수준일 정도로 앞서있다. 물론 무대 디자인은 기본. 무대디자인은 별도의 회사로 분리하는 추세이다. 미수금 문제는 여전하다. 그래서 예전처럼 광고주의 파트별 개별발주 형태가 일부 부활한 것이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경우가 그러하다.
-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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