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칼럼] 행사제안서 평가, AI로 인해 ‘차별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행사제안서 평가를 하다 보면 AI의 강력한 영향력을 실감합니다. 지금의 우리 삶은 AI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힘을 빌려 많은 분야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현상이 축제·행사 산업의 미래에 긍정적인 신호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콘셉트나 주된 내용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외모나 성격이 닮았듯, 지금의 행사제안서들이 딱 그 꼴입니다. 특히 제안서의 첫 부분인 도입부나 환경 분석 파트는 어느 회사가 썼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꽤 많습니다.
들은 얘기인데, 얼마 전 13개 회사가 참여한 모 행사제안서 평가에서 모든 업체의 콘셉트가 거의 유사하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점점 고유의 차별화가 사라지고 규격화되어 가는 행사제안서를 마주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이 되고 나면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니 조금은 변하겠지만요.
둘째는 시안이 현실과 동떨어질 만큼 화려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예산의 행사가 제안서상에는 거의 10억 원 규모처럼 보이는 시안이 주류를 이룹니다. 아주 화려하고 23세기의 미래 도시를 표현하는 이미지가 대다수입니다. 과거 이미지 컷을 전문으로 그리던 작가들의 그림에는 어딘가 사람 냄새도 나고 무대 동선이나 시스템을 고려한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반면, AI가 그려낸 그림은 화려함과 압도적인 규모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입견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그렇습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렇게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는 가상의 시안이 심사위원의 눈을 속여 선정될 경우, 결국 실제 실행 단계에서 예산 부족이나 연출 미흡, 나아가 안전 문제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실행력이 떨어지는 겉핥기식 이론에 불과합니다.
요즘은 행사기획자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I를 활용합니다. 저 역시 자주 이용합니다. 이번에 맡은 축제 발전용역에서도 AI를 실험적으로 이용해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 내용을 거의 다 뭉개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제 손으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현장의 동선과 지역의 특수성을 담아내야 하는 ‘실행 용역’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론적인 내용만 가득해 도대체 핵심이 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역 고유의 매력과 행사의 생리를 모르는 AI 데이터의 한계였습니다.
다만, 저는 AI를 활용할 때 나름의 방식을 씁니다. 먼저 중요한 핵심 내용을 프롬프트로 정리해 주고, 구체적인 상황을 인지시킨 뒤,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세세하게 알려주며 정리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며 다시 수정 요청을 하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비로소 원하는 내용의 60~70퍼센트 정도까지 퀄리티가 올라옵니다. 우스운 것은 AI도 대충 하면 대충 결과물을 내놓고, 윽박지르고 혼내고 달래가며 집요하게 굴어야 그나마 결과물이 훨씬 나아진다는 점입니다. AI와 사람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어 혼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내용 면에서 별반 차별화되지 않은 기획서를 가지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프리젠터(발표자)의 개인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제안서 자체에서 변별력이 사라지니, 발표자가 그것을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청중을 설득하느냐는 ‘인간적인 역량’이 승패를 가르는 것입니다.
오늘 고백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판단과 인식일 뿐입니다.(폄하가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물론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AI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앞으로 그 의존도는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AI에 지배당할 것이냐, 아니면 이 AI를 올바르게 지배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즉 ‘컨트롤 능력’입니다. 특히 축제와 행사 기획은 무엇보다 콘셉트에 맞는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와 현장에서의 안정적인 운영 능력이 생명입니다. AI가 그럴듯한 문장과 화려한 포장지는 만들어줄지 몰라도, 행사의 본질을 채우는 인간 기획자 고유의 ‘인간적 감각’과 ‘현장 장악력’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 진짜 강력한 차별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엄상용(이벤트넷 대표, 관광학박사)
영자칼럽은 '운영자"칼럼입니다. 오래전부터 써오다가 최근 게을러서.
앞으로 자주 올리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내용이 있으시면 카톡 'eventnet'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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