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놀이 알바로 시작된 35년, 행사기획자 김지욱”
창의성과 현장이 만든 한 기획자의 이야기**

국내 대형 퍼레이드·거리축제·정부 행사 등 굵직한 현장을 30년 넘게 책임져 온 그는, 여전히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일본·미국·프랑스·아랍에미리트 등 수차례 해외 현장을 오갔고, 인터뷰 직전에도 그는 “모레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며 웃어 보였다.
환갑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가장 현장에 가까운 사람’으로 뛰고 있는 그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를 다시 다음 프로젝트로 이끄는가?
■ 88년 올림픽 길놀이에서 시작된 35년의 길
그의 경력은 뜻밖에도 ‘대학생 여름방학 아르바이트’에서 출발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 거리축제 스태프 알바로 시작했어요. 졸업 후 직장을 잠시 다니다가 89년에 군대를 갔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 일할 수 있었던 게 정말 행운이었죠.”
그가 처음 참여한 88년 올림픽 거리축제는 바로 ‘길놀이 퍼레이드’였다. 이후 89년 올림픽 1주년 거리축제, 2013 대전엑스포 길놀이, 95년 광복 50주년 길놀이 등 대한민국 기념행사사의 굵직한 장면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광복 50주년 때는 서울시 길놀이부터 전체 메인 퍼레이드까지 총괄했어요. 98년 건국 50주년 행사는 태풍으로 한 번 취소됐다가 결국 10월에 성남비행장을 떠나 서울역-광화문까지 이어졌죠. 그 모든 총괄을 제가 맡았고…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에요.”
■ “우리 일은 반복이 없어요. 늘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니까.”
그는 이 일을 30년 넘게 이어온 이유를 단순히 “평생 직업이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다.
“똑같은 일을 10년 해도 매번 다른 요소가 들어와요. 크리에이티브한 일이라 뇌가 쉴 틈이 없죠. 뇌가 쉬면 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기획자’란 새 아이템을 고민하고, 익숙한 것도 다시 업그레이드하며, 매 순간 상황에 맞는 창의적 해결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창작자예요. 현장이 매번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같은 사업을 여러 해 맡아도 매년 새로워요.”
■ ‘정년이 없는 업’, 그리고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행복’
올해 그는 수술과 회복을 겪으면서도 수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우리 업계는 정년이라는 게 없어요. 움직이고, 일하고, 인정받으면 계속하는 거죠.”
그는 평생 정부 행사와 공공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일해 왔기에, 지금도 발주처로부터 ‘존중받는 경험’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여겼다.
“다음 주에도 뉴욕으로 출장을 가는 이유가 3년 뒤 프로젝트 준비 때문이에요. 그 일을 맡을 수 있고, 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 “우리가 고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남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업을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남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일이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희도 만족감을 느껴요.”
주말을 반납하는 일은 기본이고, 행사가 몰리는 시기에는 밤샘도 흔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즐겁다고 말한다.
“남들이 쉬는 날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업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인생이 참 좋습니다.”
다만 직원들에게 같은 삶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포괄임금제 절대 안 써요. 근무·휴일수당 10분 단위로 계산해서 주고, 현장수당도 직급별로 따로 지급합니다. 직원들이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 대통령 순방 공연? ‘급한 미션’, 그러나 가능한 이유
인터뷰 중 가장 신기한 순간은 대통령 순방 공연 준비 얘기였다.
아랍에미리트 방문 당시 공연도 매우 급하게 결정됐다고 한다.
“그게 우리한테 주어진 미션이죠. 그런데 감사한 건 30년 넘게 쌓은 네트워크예요. 급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조수미 선생님을 섭외해야 한다? 일반인은 연락처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는 거예요.”
그는 이를 ‘내공’이라기보다 ‘축적된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까요?”
기자는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물어봤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시겠느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마 또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창의적인 일이 없어요. 저는 AI가 기획서까지는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현장에서 상황이 바뀌고, 문의 크기를 재고, 사람을 움직이고, 즉석에서 판단하는 건 AI가 못해요. 우리 일이 사람들을 진짜 즐겁게 하는 일이니까요.”
■ 2028 UN Ocean Conference를 향해
그는 인터뷰가 끝난 직후에도 “내일모레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다시 바쁘게 일정을 확인했다.
“2028년에 한국이 UN 오션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지구의 70%인 바다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활용할지 논의하는 정말 중요한 행사예요. 그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너무 영광이죠.”
■ “이 일이 힘들어도, 저는 참 행복합니다.”
그는 끝까지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출장 싫고, PT 싫고, 무전기 싫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정작 그 모든 과정이 그의 삶을 이루고 있었다.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죠. 남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고 우리가 또 기뻐할 수 있으니까요.”
35년 동안 한국의 길을 밝힌 그는, 여전히 다음 축제를 상상하며 오늘도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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